Architecture2020. 1. 30. 00:09

2020년 6월 프랭크로이드 라이트가 설립한 건축학교 탈리신(Taliesin)이 문을 닫는다.

1932년 개교 후 90년만에 폐교한다.

 

Frank Lloyd Wright's architecture school to close after 88 years

The school founded by iconic architect Frank Lloyd Wright will close its doors in June.

www.cn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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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2019. 10. 28. 12:43

사카구치 교헤(1978~)
80년대 버블다운후 1992년부터 2012년 까지 잃어버린 10년(20년) 기간동안 사회에 나온 세대, 지표로 삼을 만한 건축가.

바로 위 소우 후지모토(1971~)에 비해 7살어리만 굉장히 커리어가 다르다.
사실 후지모토도 버블다운시절 30대를 보냈으니 그의 윗대에 비해서도 작품수가 훨씬 적다.
니시자와 류에(1966~)는 윗세대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겨우 살아남은 굉장히 예외적인 케이스.

건축,주거공간을 작동시키는 보이지 않는 부조리한 사회시스템을 정치 활동,환경 운동을 의태하여 수면위로 끌어올린 그의 시도는 대안적 건축가상,주거공간을 제시했다. '0엔 하우스'는 어떻게 보면 사회적 행위를 통해 그가 제시하는 조각품적 성격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카구치 쿄헤이의 건축,도시,공간에서 공동체, 휴머니티를 다시 회복하려는 계획은 2013년 신정부 활동 종료선언으로 힘을 잃었다. 2011년 도호쿠 대지진 이후 일본사회가 급격히 보수화 되면서 동료,지지세력을 확보하지 못한것이 실패의 원인인것같다. 최근 생각나 찾아본 그의 모습은 상당히 지치고 모든걸 내려놓은것 같아 안타까웠다.

사실 사카구치 쿄헤이도 이런 대안적 건축을 통해 건축가로서 나아가려 했을것이다. 하지만 일본사회,경제는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의 활동을 바탕으로 '0엔 하우스'가 스터디 모델이 되어 공동주거를 설계했다면, 또 건축으로 구현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일본의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의 상황을 목전에 둔 2020년 대한민국. 90년대,00년대생 중에 사카구치 교헤이에 상응하는 건축가가 나올까? 나온다면 어떻게 다를까? 한국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실험이 성공할수있을까?
내가 학생때 광주비엔나레에 와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했었는데 직접가지 못한게 지금 후회된다. 자료도 별로 없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별 반향이 없었다.

1) https://www.youtube.com/watch?v=-Ekl5XpRkfs&feature=youtu.be&fbclid=IwAR3TB7wfDF0K4MMJBgT2w9r8_fxVuOt71s6ro9Cs8i-i-oXGjbZ2BEPH_2c

2) https://www.youtube.com/watch?v=8AvMn4VJI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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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2019. 10. 26. 00:15

요즘 한.일관계가 안좋다지만, 한국인과 일본인은 이런면에선 거의 차이가 없다. 우리가 일본에게서 배운건가? 이 지긋지긋한 학벌, 계보주의. 오히려 일본건축계에서 안도 타다오를 미워할수록 후세에 안도 타다오는 더욱 빛날것이다. 아직 일본 건축계에서 따로 떨어져있는 안도 타다오, 누가 그의 방법을 이어서 아시아에서 진일보 시킬까?

미국의 건축비평가 Martin Filler가 밝히는 프리츠커 수상 스토리의 비화

1993년 당시 프리츠커 심사위원이었던 프랭크게리와 리카르도 레고레타가 안도 타다오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실제로 보고싶다고 하자, 일본건축계에서 압력을 넣었다는것. 단게 겐조 다음에 수상할 사람은 안도 타다오가 아니라 마키 후미히코라고(그렇지 않으면 외교적 결례라나?). 결국 93년은 마키 후미히코, 3년뒤 95년 수상한 안도 타다오.

마키 후미히코는 반드시 댓가를 치를꺼다. 바로 위 단게 겐조도 만만치 않게 제국주의자 였구만. 게리 입장에선 황당했을듯. 생각해보니 그래서 게리가 일본에 주요 프로젝트가 없는 이유이기도 한듯. 게리 다음에 타겟삼은게 자하 하디드. 미움 받는것도 역사적 계보가 있다?!

이 지점에서 슬퍼지는건 옆나라 오세훈 시장이 주도한 DDP현상설계 스토리.......자하 하디드의 대표작은 서울에(한국 건축계의 온갖 방해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According to Gehry's account at the time, he and the Mexican architect Ricardo Legorreta (a Pritzker juror from 1985 to 1993) had asked their local hosts to arrange for them to see the buildings of Tadao Ando, based in nearby Osaka and beginning to be touted as his country's most promising younger architect for works such as his powerful Cavern of the Light of 1987-89 in Ibaraki. The Japanese demurred, explaining that by right of seniority, the next Japanese recipient after Tange would have to be Fumihiko Maki (a well-connected modernist who was a Pritzker juror from 1985 to 1988), and only after Maki could the junior Ando even be considered. To do otherwise, they implied, would be a fatal diplomatic gaffe. And this is precisely what happened when Maki was chosen in 1993, and Ando followed him in 1995, both during Gehry's two-year tenure as a juror.'

 

Eyes On The Prize

For two decades now, the Pritzker Prize has mirrored the best and the worst in contemporary architecture. For many observers of the arts, indeed, the very idea of such a prize is deeply problematic. Applying competitive standards to creative efforts is at

newrepubl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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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2019. 7. 21. 01:06

© Pelli Clarke Pelli

1926년생인 시저 펠리(Cesar Pelli)가 2019년 7월 19일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출생년도로 보면 얼마전 세상을 떠난 초기 포스트모던세대의 로버트 벤추리(1925-2018)보다 한살 어리고, 성기 포스트모던세대의 총아였던 마이클 그레이브스(1934-2015)보다 8살정도 위다.

이처럼 초기 포스트모던 세대로, 찰스 젠크스는 시저 펠리를 postmodern-classism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그의 득의작은 pacific design center(1975년), 일명 blue whale이라고 불려지는 건물이다. 사실 이 건축물은 시저펠리가 독립하기전  Gruen Associates에서 파트너 건축가로 일하면서 흑인 여성 건축가 Norma Sklarek과 함께 설계한 건물이다. 크레딧 문제가 있는지 어떤곳은 ceaser pelli, 어떤곳은 Norma Sklarek으로 표기가 되어있다. 시저펠리가 독자적으로 독립해 사무실을 열었던 해가 1977년이니 거의 Gruen Associates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작업한 작업인셈.

Norma Sklarek, Gruen Associates, Pacific Design Center, Los Angeles, 1978 © Gruen Associates

일종의 박람회장의 프로그램을 가진 이건물은 파란색 유리패널을 부착하여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된 건물이다. 찰스 젠크스는 1977년 자신의 저서 포스트모던 건축의 언어(The Language of Post-modern Architecture)에서 입을 벌리고 무언가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고래로 인식되거나(입부분에 지역 레스토랑이 입점되어있다.) 인테리어 몰딩장식의 형태를 은유하고이 있는데, 이것은 대중적 문화코드가 작용한 결과로 해석하며 건축적 언어에 작동하는 다층적 문화코드와 건축적 유희적 은유의 예시로 제시하기도 했다. 찰스 젠크스는 포스트모던 초기 건축의 문법으로 찰스무어, 마이클 그레이브스와 함께 시저 펠리를 그룹에 포함시켰으니, 포스트 모던의 이론적 바탕으로 자신의 건축문법을 확장시킬수 있었다. 동년배인 찰스무어, 피터 아이젠만, 마이클 그레이브가 고전의 건축문법을 장식적언어로 변주시켰던 반면, 시저 펠리는 기호학적으로 단순하게 변주된 건축형태에 다층적 문화코드를 임베드하고 모더니즘세대의 재료인 유리를 받아들여 둘러침으로써 좀더 대형 클라이언트들에게 거부감이 덜했다고 해야할까? 언뜻보면 다른 포스트모던세대의 건축가의 디자인보다 얌전하고 덜장식적으로 보이니 말이다.

1977년 50세의 늦은나이에 독립해 Cesar Pelli & Associates Architects를 설립한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08년대 세계금융위기 이전까지 팽창하는 세계경제속에 잇따라 대형건물들을 수주하면서 주요 도시에 고층건물을 설계했다. 대표적으로 말레이지아에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뉴욕의 세계금융센터, 밀라노의 유니크레딧타워.

주요 프로젝트를 보면 버블 세계경제 맞춰 참 운이 좋았던 건축가였다.

한국에도 그의 작품이 하나있다. 바로 광화문사거리에 위치한 교보생명 사옥. 1976년 설계작이니 시저펠리가 Gruen Associates에서 일을 가지고 나와 독립해 거의 초반에 진행한 프로젝트로 추측된다.

좌) Norma Sklarek and Cesar Pelli, Gruen Associates, The U.S. Embassy, Tokyo, Japan, 1976 / 우) 교보생명 1980년

교보생명의 창업주 고(故) 신용호회장은 일본의 주미대사관 건물을 보고 너무나 마음에 들어 시저 펠리에 똑같이 지어달라고 요구한 일화는 유명하다. (후에 전국에 수많은 교보생명사옥이 시저펠리 짭퉁의 스타일로 지어진다. 시저펠리는 이사실을 알았을까?)

애초에 대지조건이 완전히 무시된채로 지어졌기 때문에 광화문 사거리 코너에 위치하였지만 건물의 양옆면이 막혀진채로 설계가 되었다. 후에 본인들도 답답했는지 2008년 양옆면을 유리로 교체해 현재는 양옆면이 유리인 건물을 볼수있다. 

일본 미대사관과 다른점이라면 건축물 후면의 아트리움을 들수있다. 현재까지도 주변에 신축된 대형 오피스건물들이 들어섰지만 광화문 교보생명 사옥의 후정 아트리움은 아직까지도 최고다. 정면출입부는 움푹들어가 중앙홀이 셋백되어 음의 공간을 형성하는 반면, 후면 후정은 유리박스가 튀어나와 양의 형태로 전환되 대치되면서 묘한 공간감을 선사한다. 정면 출입구부터 코어를 거쳐 후정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광화문 도심속에 색다른 공간감을 선사한다. 초기 완공된 아트리움은 아치형태였으나 2008년 리모델링시 사각형의 단순한 모양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 글래스 아치 아트리움은 그의 다음프로젝트인 1988년 뉴욕 world finance center 두동사이의 오픈된 공공광장의 형태로 디벨롭되었으니, 그에겐 클라이언트의 강력한(?)요구로 건드릴수없는 정면과 달리 후면의 일종의 개방된 공공공간으로 설계에 꽤 신경을 썻던것으로 생각된다.

좌) 교보생명사옥의 후면 아트리움 - 1980년  / 우) World Financial Center - 1988

2019년 얼마전 세상을 떠난 아이오밍페이를 마지막으로 모던세대 건축가들은 모두 세상을 떠낫고, 마이클 그레이브스, 작년에 세상을 떠난 로버트 벤추리에 이어 시저 펠리까지 초기 포스트모던 세대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있다.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퍼옮기시는것을 금합니다. 링크 공유와 댓글은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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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2019. 7. 8. 19:32

2019년 아라타 이소자키의 프리츠커 수상을 돌아보며

Arata Isozaki Re-ruined Hiroshima, project, Hiroshima, Japan (Perspective) 1968


  일본의 건축가들을 보면 모더니즘 시대부터 현재까지 주요 역사적 변곡점마다 지표가 되는 건축가들이 촘촘히 자리하고 있고, 그들이 모여 일본 건축의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

일본의 주요 건축가들을 세대별 나이순으로 열거해보면

  • 전후모던 : 단게 겐조(1913년생)-키요노리 키쿠 타케(1928년생)-마키 후미히코(1928년생)

  • 말기 모던-포스트모던 1 : 이소자키 아라타(1931년생)-안도 타다오(1941년생) 

  • 포스트모던 2 : 도요 이토(1941년생)-겐코 쿠마(1954년생)-시게루 반(1957년생) 

  • 슈퍼플랫 : 카즈요 세지마(1956년생)-니시자와 류에(1966년생)-소우 후지모토(1971년생)-이시가미 준야(74년생)

  이렇게 나이순으로 열거해보면 어떠한 패턴을 알 수 있다. 모더니즘 이후 역사의 시대별로 비어있는 부분은 초기 모더니즘 시대(독일 표현주의, 바우하우스)를 제외하고, 하이 모더니즘부터는 쭉 일본만의 역사적 스펙트럼을 촘촘히 확보하고 있다.(그들은 자신들만의 전통과 서구의 모더니즘을 적절히 섞었고 오리엔탈리즘, 자포니즘을 교묘히 이용했다.) 역사적 변곡점마다 당 시대 사람들의 성취들이 쌓이고 쌓여 오늘날 일본 건축이 하나의 스펙트럼으로서 인식되고 비평될 수 있다. 

  바로 옆 나라 한국의 건축계는 그럼 어떠할까? 사실 김수근 건축가가 2019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아라타 이소자키와 동갑(1931년생). 김수근 건축가가 1986년(당시 55세)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으면 일본보다 한 발짝씩 늦었겠지만 한발 한발 스펙트럼을 채워나가며 따라붙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럼 한국의 주요 건축가들을 열거해보자,

  • 김중업(1922년생)-김수근(1931년생)

  • 김종성(1935년생)-김태수(1936년생)-우규승(1941년생)

  • 조성룡(1944년생)-김인철(1947년생)-승효상(1952년생)

  • 조민석(1966년생)-김찬중(1969년생 추정)

  • 이 이후 세대에 해당되는 ‘젊은 건축가’ 그룹들

  일단 나이순으로만 열거해 보면 위와 같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김수근 건축가 이후에  각 시대별 요구조건을 충족하는 활동을 못해왔다는 것. 크게 보면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던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던 미니멀리즘 세대(일본의 경우 안도 타다오, 마키 후미히코)가 비어있다. 이 시기에 한국은 건축가 승효상 씨를 중심으로 4.3그룹이 비평적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말기 포스트모더니즘에 해당하는(일본의 경우 슈퍼플랫 세대) 작업이 한국에서는 전개되지 못했다. 일본이 모더니즘의 방법론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방법론을 적절히 섞어가며 포스트모던 이후의 시대에 적응하려 애쓰는 동안 한국은 조민석 씨가 렘 쿨하스(OMA)의 방법론을 한국에서 전개하였다(조민석 씨가 매스스터디즈를 설립 한해가 2003년). 

  2008년(세계 금융위기로 역사적 변곡점의 해)에 시작된 젊은 건축가상 제도로 이후 세대들이 독립해 활동을 시작한 지도 작년(2018년)으로 10년이 마무리가 되었다(사실상 2015년을 정점으로 쇠락하고 있다. 주요 수상자들이 조민석 씨의 매스스터디즈의 출신). 이렇게 소위 젊은건축가그룹(사실 젊진않지만)으로 한국건축계도 어떤 세대구분의 선이 그어졌고, 위 세대들의 성취를 더듬어가며(혹은 적절히 비틀며) 활동할수있는 시공의 마지막 문이 닫혔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갈무리된 성취들을 정리하고 비평적 시선으로 이전의 성취들을 바라보며 한국 건축의 다음 단계를 모색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퍼옮기시는것을 금합니다. 링크 공유와 댓글은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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